한 해 달리기를 돌아보는 법

짧은 답

한 해 달리기를 돌아볼 때 총거리 하나만 보면 놓치는 것이 많다. 52주 가운데 몇 주를 달렸는지, 어느 날이 가장 편했는지, 어느 달에 아파서 쉬었는지를 함께 보면 내년 계획에 바로 옮길 단서가 나온다. 필요한 것은 달력 한 장과 기록 목록뿐이다.

12월이면 피드에 올라오는 숫자

12월 중순이 되면 SNS에 비슷한 그림이 줄지어 올라온다. 한가운데에 큼직한 숫자가 있고 그 옆에 km가 붙어 있다. 한 해 동안 달린 거리다. 달린 횟수와 시간, 가장 길게 달린 날이 작은 글씨로 따라붙고, 지도 위에 겹쳐 그린 경로나 대회 메달 사진이 곁들여지기도 한다. 기록 앱이 만들어 준 결산 카드를 그대로 올린 사람도 있고 손수 꾸민 사람도 있다.

달리기를 기록해 남에게 보이는 일은 몇 해 사이 눈에 띄게 늘었다. 매경이코노미 보도를 보면 한 사진 공유 SNS에서 ‘러닝’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은 올해 9월 기준 400만 건을 넘었는데, 2023년 말에는 200만 건 정도였다. 연말 결산은 그렇게 쌓인 인증이 한 해의 끝에서 한 장으로 묶이는 자리다.

총거리가 말해 주지 않는 것

총거리는 좋은 숫자다. 한 해를 한 줄로 줄여 주고, 지난해와 견주기 쉽고, 보는 사람도 바로 알아듣는다. 다만 더하기만 한 숫자라 그 안의 모양은 보이지 않는다. 봄에 몰아서 달리고 여름부터 쉰 사람과 일 년 내내 조금씩 달린 사람이 같은 숫자를 받는다. 무릎이 아파 두 달을 쉰 일도, 유난히 몸이 가벼웠던 어느 가을 아침도 합계에는 흔적이 없다.

큰 숫자를 주 단위로 바꾸면 느낌이 달라진다. 한 해는 52주이니 1,000km는 한 주에 19km 남짓이고, 500km는 한 주에 10km가 조금 안 된다. 멀어 보이던 숫자가 한 주 한 주의 평범한 달리기를 모은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돌아볼 것도 합계보다는 그 한 주들이다.

피드의 숫자가 올린 사람의 숫자라는 점도 기억해 둘 만하다. 한국갤럽이 올해 3~7월 만 13세 이상 5,251명에게 물었을 때 최근 1년 안에 조깅이나 달리기를 한 적이 있다는 사람은 31%였다. 한 번이라도 달린 경우를 센 것이라 꾸준히 달리는 이들의 규모와는 다르다. 결산 그림은 그 가운데 올리기로 마음먹은 사람의 것이고, 대개는 올릴 만한 숫자다. 남의 총거리로 내 한 해를 잴 수는 없다.

달린 주를 세어 본다

먼저 볼 것은 달린 주의 수다. 연간 달력을 펴고 한 번이라도 달린 주에 표시를 한다. 52칸 가운데 몇 칸이 찼는지가 나온다.

날이 아니라 주를 세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하루를 빠뜨리는 일은 누구에게나 있고, 사흘 달렸는지 나흘 달렸는지는 한 해를 놓고 보면 큰 차이가 아니다. 한 주를 통째로 비우는 것은 사정이 다르다. 한 번 비면 그다음 주도 비기 쉽다. 빈칸이 장마철에 몰렸는지, 한여름인지, 일이 바빴던 달인지, 대회를 마친 직후인지를 보면 한 해의 굴곡이 드러난다.

빈칸이 길게 이어진 구간의 끝에는 다시 달리기 시작한 주가 있다. 그 주에 무엇이 달랐는지도 적어 둔다. 날이 풀렸을 수도 있고, 누가 같이 뛰자고 했을 수도 있고, 대회를 신청했을 수도 있다. 쉬게 된 이유보다 돌아온 계기가 내년에 더 쓸모 있다.

가장 편했던 날을 찾는다

다음은 기록이 가장 좋았던 날이 아니라 가장 편했던 날이다. 숨이 차지 않았고, 다리가 가벼웠고, 끝난 뒤에 조금 더 달릴 수 있겠다 싶었던 날을 말한다. 기록 목록을 훑다 보면 그런 날이 두세 번은 떠오른다.

그날들의 조건을 나란히 놓는다. 아침이었는지 저녁이었는지, 어느 코스였는지, 혼자였는지, 전날 잠은 어땠는지, 기온은 어느 정도였는지를 적는다. 두세 날에 겹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자기에게 맞는 달리기의 모양이다. 기록이 좋았던 날은 여러 가지가 맞아떨어진 결과라 일부러 다시 만들기 어렵지만, 편했던 날의 조건은 다음 주에라도 다시 차릴 수 있다.

아파서 쉰 달을 표시한다

세 번째는 아파서 쉰 기간이다. 달력에서 그 달을 찾아 표시하고 바로 앞 서너 주의 기록을 본다. 주간 거리를 갑자기 늘렸는지, 대회 직후에 쉬지 않고 달렸는지, 평소 하지 않던 빠른 달리기를 몰아서 했는지를 살핀다. 기록만 보고 원인을 가려낼 수는 없다. 그래도 같은 장면이 두 번 나왔다면 내년에 조심할 대목 하나는 얻는다.

여기서 할 일은 반성이 아니라 기록이다. 어느 달에 어디가 아팠고 얼마나 쉬었는지를 한 줄로 적으면 된다. 지금도 통증이 이어진다면 달력을 들여다볼 때가 아니라 진료를 받을 때다.

거리로 남지 않는 것도 적는다

  • 돈: 신발을 몇 켤레 샀고 옷과 대회 참가비, 이동에 얼마를 썼는지 적는다. 항목별로 실제 얼마가 드는지는 러닝은 정말 돈 안 드는 운동일까에서 따져 봤다.
  • 장소: 처음 가 본 코스와 여행지에서 달린 아침을 적는다. 달리러 떠나는 여행이 올해 한 번이라도 있었다면 내년 달력에 먼저 넣을 일정이 된다.

대회도 따로 적는다. 경찰청 자료를 인용한 헤럴드경제 보도를 보면 지난해 국내 마라톤 대회는 254회 열렸고 참가 인원은 100만 명을 넘었다. 한 사람이 여러 대회에 나가면 겹쳐 세었을 수 있는 숫자지만, 대회가 많은 사람에게 한 해의 마디가 됐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나간 대회 옆에는 준비를 시작한 주를, 신청하지 못한 대회 옆에는 접수가 열렸던 때를 적어 둔다.

내년 계획으로 옮기는 법

결산이 끝나면 내년 목표를 적고 싶어지고, 이때 총거리부터 올려 잡기 쉽다. 올해 600km였으니 내년은 1,000km라는 식이다. 숫자를 키우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 다만 무엇을 바꿔야 그 숫자가 되는지가 빠져 있으면 목표와 달력이 얼마 못 가 따로 논다. 방금 돌아본 세 가지는 그 빈자리를 채운다.

올해 돌아본 것을 내년 계획으로 옮기는 예
올해 본 것내년 계획에 옮기는 법적는 예
달린 주의 수채울 주의 수를 목표로 삼고, 빈칸이 몰렸던 때에 무엇을 달리 할지 정한다30주를 40주로 늘린다. 장마철에는 실내에서 달린다
편했던 날의 조건겹쳤던 조건을 평소 일정의 기본값으로 둔다평일 하루와 토요일 아침, 집 앞 하천길
아파서 쉰 달 앞의 장면하지 않을 일 하나로 적는다대회를 마친 주에는 빠르게 달리지 않는다

요일을 어떻게 놓을지는 주 3회 달리기의 요일 배치를, 계획이 흐지부지되는 흔한 경로는 새해 달리기 결심이 금방 끝나는 이유를 함께 보면 된다.

결산 그림은 올려도 좋고 올리지 않아도 좋다. 큰 숫자와 별개로 달린 주의 수, 편했던 날의 조건, 조심할 것 한 줄이 적힌 메모가 있으면 된다. 1월 첫 주에 다시 펴 볼 것은 그 메모다.

자주 묻는 질문

1년 동안 달린 거리는 어떻게 확인하나요?
기록 앱을 썼다면 통계나 기록 목록 화면에서 한 해의 총거리와 달린 날을 찾아볼 수 있다. 앱 없이 달렸다면 달력이나 메모에 남긴 날짜를 세는 것으로 충분하다. 돌아보는 데 필요한 것은 정밀한 거리보다 언제 달리고 언제 쉬었는지다.
연간 러닝 거리는 얼마나 되어야 많이 달린 건가요?
많고 적음을 가르는 정해진 선은 없다. 총거리는 한 번에 달리는 거리와 횟수에 따라 크게 달라지므로 남의 숫자보다 자신의 지난해와 견주는 편이 쓸모 있다. 52로 나눠 한 주 거리로 바꿔 보면 감이 잡힌다.
달리기 기록을 꼭 SNS에 올려야 하나요?
올리지 않아도 된다. 공유가 꾸준히 달리는 힘이 되는 사람도 있고 부담이 되는 사람도 있다. 돌아보기는 남에게 보여 주는 일과 따로 할 수 있고, 혼자 보는 메모 한 장으로도 같은 정리가 된다.
올해 거의 못 달렸는데 돌아볼 것이 있을까요?
있다. 달린 주가 적었다면 그 몇 주가 어느 계절, 어떤 사정에서 가능했는지를 먼저 본다. 못 달린 이유를 따지기보다 달릴 수 있었던 조건을 찾아 내년 첫 달에 그대로 옮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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