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크루는 왜 이렇게 늘었을까

짧은 답

러닝크루가 늘어난 까닭은 달리기가 쉬워서가 아니라 꾸준히 하기 어려워서다. 정해진 요일과 장소가 혼자서는 지키기 힘든 꾸준함을 받쳐 주고, 퇴근길 도심에서 모이니 따로 시간을 낼 필요가 적다. 달린 뒤에 올리는 인증 사진이 다음 사람을 부르고, 가입비와 의무가 가벼워 들어가기도 쉬다가 돌아오기도 쉽다.

평일 저녁 여덟 시, 강변에서 보는 장면

평일 저녁 여덟 시쯤 한강공원에 나가 보면 비슷한 장면을 만난다. 지하철역 출구 앞에 운동복 차림의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고, 누군가 인원을 센다. 둥글게 서서 발목과 무릎을 돌린 다음 두 줄로 출발한다. 한 시간쯤 뒤에는 같은 자리로 돌아와 단체 사진을 한 장 찍고 각자 지하철을 타러 간다.

이제는 강변뿐 아니라 도심 광장과 동네 하천길에서도 익숙한 풍경이다. 달리기는 상대도, 예약할 코트도 필요 없는 운동인데 사람들은 왜 굳이 시간을 맞춰 모여서 달릴까? 러닝크루라는 형식이 무엇을 풀어 주는지 보면 답이 나온다.

숫자로 확인되는 것과 안 되는 것

러닝크루가 전국에 몇 개 있고 몇 명이 속해 있는지를 세는 통계는 찾기 어렵다. 신고나 등록 없이 SNS 계정 하나로 생기고, 소리 없이 사라지기도 해서다. “크루가 몇 배 늘었다”는 말을 숫자로 뒷받침할 자료가 아직 마땅치 않다.

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대회다. 올해 3월 17일에 열린 서울마라톤에는 79개국에서 3만 8,000여 명이 출전했는데, 지난해 3만 1,800여 명보다 20%가량 늘어난 규모다. 다만 이 숫자는 엘리트 선수까지 포함한 대회 출전 인원이지 크루에 속한 사람의 수가 아니다. 달리는 사람이 늘었다는 정황일 뿐이다.

운동 참여 통계에서도 달리기만 떼어 보기는 쉽지 않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1월에 발표한 조사에서 일주일에 한 번, 30분 이상 운동하는 사람의 비율은 2023년 62.4%로 한 해 전 61.2%보다 조금 올랐다. 그런데 발표를 전한 기사에 나오는 종목은 걷기, 등산, 보디빌딩 순이고 달리기의 비중은 따로 없다. 달리기 인구가 실제로 얼마나 늘었는지는 참여율과 대회 수를 집계 기준과 함께 따로 읽어야 할 문제다. 아래는 통계가 아니라, 이 형식이 왜 사람을 끌어당기는지에 대한 풀이다.

꾸준함을 의지 대신 약속에 맡긴다

달리기는 시작하기 쉽고 이어 가기 어렵다. 운동화만 있으면 오늘이라도 나갈 수 있지만, 그만큼 빠지기도 쉽다. 야근한 날, 비가 올 것 같은 날, 별일 없이 피곤한 날에 건너뛰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크루는 이 문제를 약속으로 바꾼다. “화요일 저녁 여덟 시, 몇 번 출구 앞”이라는 일정이 생기면 나갈지 말지를 그날 기분에 묻지 않아도 된다. 참가 신청을 해 두었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현관문을 나서게 한다. 의지의 문제가 일정의 문제로 바뀐다.

처음 달리는 사람에게는 정할 것이 줄어든다는 점도 크다. 어느 길로, 몇 km를, 어떤 속도로 달릴지를 크루가 미리 정해 둔다. 혼자 시작할 때 무엇부터 하면 되는지는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을 위한 안내에 정리해 두었다.

퇴근길 도심이 집결지가 됐다

직장인은 집에 들어가 앉으면 다시 나오기가 어렵다. 회사 근처나 환승역에서 모이면 달리기가 퇴근길 중간에 끼어든다. 따로 시간을 내는 것이 아니라 집에 가는 길을 한 시간 늦추는 일이 된다.

한강공원과 도심 광장, 하천길이 집결지가 된 까닭도 비슷하다. 지하철역에서 가깝고, 밤에도 밝고, 신호등에 걸리지 않고 길게 달릴 수 있다.

남는 걸림돌은 출근 가방과 갈아입을 옷이다. 공공 쪽에서도 움직임이 보인다. 서울시는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안에 달리는 사람을 위한 공간인 ‘러너스테이션’을 만들고 있는데, 4월에 열려던 계획을 미뤄 5월 중순 이후에 개관할 예정이다. 아직 문을 열기 전이라 얼마나 쓰일지는 지켜봐야 한다.

인증 사진 한 장이 모집 공고가 된다

달리기가 끝나면 사진을 찍는다. 단체 사진 한 장, 그리고 지도 위에 그려진 경로와 거리, 페이스가 담긴 화면이다. 이 사진은 달린 사람에게는 기록이고, 보는 사람에게는 안내문이다. 어디서 모이는지, 어떤 사람들이 오는지, 얼마나 달리는지가 그 안에 들어 있다.

그래서 크루는 따로 홍보하지 않아도 알려진다. 친구의 게시물에서 처음 보고, 크루 계정에서 다음 일정을 확인하고, 댓글이나 메시지로 참가를 신청한다. 발견부터 참가까지가 SNS 안에서 끝난다.

사진이 좋은 쪽으로만 작용하지는 않는다. 남의 기록이 매일 눈에 들어오면 자기 속도가 초라해 보이기 쉽고, 달리기보다 인증이 먼저가 되기도 한다. 기록을 올리지 않아도 달린 것은 달린 것이다.

가입비도 의무도 가벼운 모임

오래된 마라톤 동호회에는 회비와 임원, 정기 훈련과 뒤풀이가 따라오곤 한다. 관계가 깊어지는 대신 들어가는 문턱이 높다. 러닝크루는 이 문턱을 낮췄다. 가입비를 받지 않는 곳이 많고, 회원 자격을 따지기보다 그날 달릴 사람의 신청만 받는 식으로 굴러간다. 한 달을 쉬었다가 다시 나가도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 느슨함이 크루의 수를 늘린다. 마음 맞는 몇 사람과 계정 하나만 있으면 새로 만들 수 있고, 동네별, 회사별, 속도별로 갈라져 나오기도 쉽다.

가벼움에는 값이 따른다. 책임질 사람이 분명하지 않은 채로 인원이 수십 명까지 불어나면, 산책로를 넓게 차지하거나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는 일이 생기기 쉽다. 길은 달리는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여럿이 달릴 때 생기는 갈등과 지켜야 할 예절은 크루가 늘수록 더 자주 이야기될 주제다.

처음 나가 보기 전에 확인할 것

크루가 궁금해졌다면 첫 참가 전에 공지에서 몇 가지만 확인하면 된다.

러닝크루 첫 참가 전에 확인할 것
항목공지에서 볼 것이유
모이는 요일과 장소퇴근길 동선 안에 있는지멀면 두세 번 나가다 그만두기 쉽다
달리는 거리5km 안팎의 짧은 선택지가 있는지처음부터 길게 달리면 다음 참가가 부담스럽다
속도와 조 편성가장 느린 조의 페이스가 적혀 있는지옆 사람과 말을 나눌 수 있는 속도여야 오래 간다
참가 방식회원제인지, 그날만 신청하는지가볍게 한 번 가 보고 정할 수 있다
인원과 진행한 번에 몇 명이 달리고 누가 이끄는지인원이 많을수록 길을 나눠 쓰는 규칙이 필요하다

달려 보고 맞지 않으면 다른 곳을 찾거나 혼자 달리면 된다. 크루는 달리기를 이어 가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다.

바뀐 것은 약속하는 방식이다

러닝크루가 늘었다고 달리기라는 운동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달라진 것은 달리기를 둘러싼 약속의 모양이다. 정해진 요일이 꾸준함을 받쳐 주고, 퇴근길 도심이 장소를 내주고, 사진 한 장이 다음 사람을 부르고, 낮은 문턱이 그 사람을 받아 준다. 모이는 방식과 별개로 젊은 층이 여러 운동 가운데 왜 달리기를 골랐는지는 따로 따져 볼 질문이다.

올봄 강변의 저녁 풍경이 내년에도 그대로일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혼자서는 석 달을 넘기지 못하던 사람이 약속 덕분에 한 해를 달렸다면, 그 사람에게 크루는 제 몫을 한 셈이다.

자주 묻는 질문

러닝크루는 초보자도 참가할 수 있나요?
초보자를 받는 곳이 많다. 속도별로 조를 나눈다면 가장 느린 조에서 시작하면 된다. 다만 달리는 거리와 속도는 크루마다 다르므로, 신청하기 전에 공지에서 가장 느린 조의 페이스와 그날 거리를 확인하는 편이 좋다.
러닝크루와 마라톤 동호회는 무엇이 다른가요?
뚜렷한 경계는 없다. 대체로 동호회는 회비와 임원, 정기 훈련이 있는 회원제에 가깝고, 러닝크루는 SNS로 일정을 알리고 그날 나올 사람의 신청을 받는 느슨한 모임에 가깝다.
러닝크루 가입비는 얼마인가요?
크루마다 다르다. 가입비 없이 그날 참가 신청만 받는 곳이 많고, 회원제로 회비를 걷어 대회 참가나 단체복에 쓰는 곳도 있다. 참가하기 전에 공지에서 금액과 쓰임새를 확인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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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러닝 붐은 마라톤 대회 수와 참가 인원, 달리기 참여 비중, 러닝 관련 매출에서 모두 확인된다. 다만 숫자마다 세는 대상이 다르고, 러닝 인구 1,000만 명은 추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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